영유아기는 인간 두뇌 발달의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아이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며, 이 시기의 경험이 평생의 인지능력과 정서 발달에 영향을 미치죠.
요즘 부모님들 사이에선 '영어는 빨리 시작해야 한다', '수학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조기교육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런 접근이 정말 아이의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될까요?
가톨릭대 의과대학 소아청소년과 김영훈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영유아 뇌 발달의 원리와 올바른 접근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두뇌 발달 전문가인 김영훈 교수는 30년 넘게 의료 현장에서 어린아이의 뇌 발달과 신경 건강, 효율적 교육 방법 등을 연구해왔어요.
요즘 그가 특히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과도한 영유아 사교육의 폐해입니다.
최근 사교육계에선 '7세 고시', '4세 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유아 대상 사교육이 과열되고 있는데요, 이것이 아이의 뇌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뇌 발달의 기본 원리: 두 단계를 이해하기
영유아기 뇌 발달의 양상은 정말 놀랍습니다.
출생 시 신생아의 두뇌 무게는 성인의 약 1/4정도인 350g에 불과하지만, 생후 6개월에는 700g으로 성인 두뇌 무게의 약 50%까지 성장하고, 2세경에는 1000g으로 성인 두뇌의 약 75%에 도달합니다.
특히 아이의 뇌는 생후 2년간 매우 빠르게 발달해 2세가 되면 뇌 크기가 성인의 80%에 이를 정도로 급격한 성장이 이루어지죠.
김영훈 교수는 뇌 발달에 크게 두 가지 단계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경험 기대적 발달: 기초를 다지는 시기
'경험 기대적 발달'은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시각과 청각 같은 감각이나 사고력, 사회성, 운동 능력 발달이 여기에 해당해요.
인간 진화 과정에서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발달 단계로, 이 시기에는 적절한 자극에 노출되는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10배 넘는 시간 동안 노출되더라도 효과는 20~30%밖에 안 된다고 해요.
경험 의존적 발달: 집을 짓는 시기
반면 '경험 의존적 발달'은 기초 위에 실제로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뒤 경험하는 언어적·자연적 환경을 통해 형성되는데, 이 단계에서는 교육에 얼마나 많은 시간 노출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두 가지 뇌 발달 단계에 필요한 교육 방식의 핵심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언어 발달과 뇌: 모국어가 먼저입니다
모국어 발달의 결정적 시기
아이의 발달 단계에서 3세 이전은 모국어를 익히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영유아에게 말을 많이 걸어주면 두뇌의 언어 담당 영역 발달이 촉진된다고 해요.
일상적인 환경에서 어른들로부터 말을 더 많이 듣는 아기들일수록 뇌의 언어 관련 영역에 미엘린이 더 많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엘린은 신경세포를 둘러싸면서 신경세포 간 신호 전달을 돕는 물질로, 효율적인 정보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간은 모국어를 통해 사고하고, 윤리의식도 이 같은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나중에 모든 학습의 기초가 되는 문제해결력과 창의력도 모국어 능력이 없으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요.
조기 외국어 교육의 문제점
김영훈 교수는 "조기 외국어 교육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고 말합니다.
모국어를 익혀야 할 중요한 시기에 영어부터 가르치는 것은 기반 없이 집을 짓는 격이라는 거죠.
게다가 영어를 지나치게 일찍 가르치면 나중에 수학 능력도 뒤떨어질 수 있습니다.
수학은 연산뿐 아니라 사고력에 기반한 학문인데, 모국어에 토대를 둔 언어 능력과 여기서 비롯되는 문해 능력이 없으면 문제와 맥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미디어와 뇌 발달: 조심해야 할 부분
요즘 어린아이를 달랠 목적으로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부모가 많은데, 김영훈 교수는 이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생후 24개월 전 디지털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무엇보다 언어 발달이 저해됩니다.
아이의 언어 능력은 부모와 눈을 마주치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키워지는데, 디지털 미디어가 개입되면 부모와의 애착 형성과 언어 발달이 방해받을 수 있어요.
국내 400명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노출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40%가 매일 TV를 시청하고, 12%의 영유아는 스마트폰을 매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전체의 33%가 24개월 이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심각한 수준이죠.
디지털 미디어의 과도한 노출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언어발달 지연과 주의 집중력 문제
사회성 저하와 상호작용 능력 감소
'유사 자폐' 현상 - 실제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아님에도 공감 능력 저하
신체 활동 감소로 인한 비만 및 건강 문제
짜증과 공격성 증가, 감정 조절 능력 저하
이 같은 이유로 미국 소아과학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생후 24개월 전 아이에게는 아예 디지털 미디어를 보여주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5~6세에 적합한 교육은 무엇일까?
'경험 의존적 발달'이 본격화되는 5~6세에는 어떤 교육이 적합할까요?
김영훈 교수는 이 시기 아이들은 이전까지 쌓은 두뇌 발달의 기초 위에서 자기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이때 아이가 언어, 과학, 예술 등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갖는지 유심히 살피고 관련 분야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게 해주는 게 좋아요.
또한 아이가 자기 유능감을 느낄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도록 돕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주변에서 이 나이 때 아이가 어려운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거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모두 알고 있는 경우가 많죠?
이것도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집중하는 법을 키우는 활동입니다.
특정 분야에 '덕후'가 되면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 이것이 바로 창의력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뇌 발달을 위한 조언
김영훈 교수가 영유아 사교육과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아이의 정신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입니다.
최근에는 초등학교에도 가지 않은 아이 중 두통이나 틱, 심지어 우울증 환자가 많아졌는데, 그 원인을 들여다보면 과도한 학습 스트레스에 노출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학습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감이 지속되면 아이 뇌는 그것에 맞춰 변형되고, 자칫 정서적 문제가 영구화될 수도 있어요.
건강한 뇌 발달을 위해 부모님들께 드리는 조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3세 이전에는 모국어 발달에 집중하세요.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풍부한 언어적 자극을 제공하세요.
24개월 전에는 디지털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하세요.
아이의 관심사를 존중하고, 그 분야에 깊이 빠져들 기회를 주세요.
아이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 조기 사교육은 지양하세요.
평생학습자로 키우기 위한 접근
"조기 사교육을 안 시켰다가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많은 부모님들이 갖고 계신 고민입니다.
이에 대해 김영훈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력을 갖춘 '평생학습자'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아이가 조기 사교육을 통해 이른바 명문고, 명문대에 진학하더라도 '훈장(勳章)'은 될지언정 평생 필요한 역량을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심지어 주입식 조기 사교육을 받은 아이는 입시 공부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해요.
아이의 두뇌 발달과 정신 건강, 향후 학습 능력까지 해치는 조기 영유아 사교육보다는,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적절한 자극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유아기 뇌 발달의 황금기를 놓치지 않도록, 부모님들이 조급함보다는 아이의 발달 단계와 특성을 이해하고 균형 잡힌 접근을 하시길 바랍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한 진정한 투자는 당장의 학습 성과가 아니라, 건강한 뇌 발달을 통해 평생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임을 기억해주세요.